박영효(1861~1939)는 개화의 뜻을 품고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친일파가 되어 변절한 인물이다 1882년 외교 사절로 일본에 가는 과정에 태극기를 디자인하였고 1883년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며 1948년부터는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었다 그는 개혁과 근대화에 중점을 두었고 조선의 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추후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친일파로 가는 길을 걸었다 박영효는 1861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철종의 딸 영혜 옹주와 결혼하며 우의정으로 승진하지만 결혼생활 3개월 만에 영혜옹주가 죽고 만다 이후 서구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박영효는 박규수, 유대치 등의 집에 드나들며 김옥균, 홍영식 등 개화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 1882년 구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