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우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된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이 있어 누구나 너그럽기란 쉽지 않다 현대사회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회의 소금과 같은 존재로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조선 태종때 윤회의 너그러움
조선 초 태종때 윤회(尹淮)는 호를 청향당이라는 학자로 벼슬로는 병조판서, 대제학에 이르렀다 그가 젊었을 때 일이다 길을 가다 날이 어두워져 시골 객점에 들르지만 객점 주인은 방이 없다며 재워 주기를 거절한다 하는 수 없이 마당 끝 헛간에서 하룻밤 지새울 거라 생각한 윤회는 객점 주인 어린 아들이 커다란 진주를 들고 나와 마당에서 놀다 떨어뜨리게 되고 이를 본 거위가 그 진주를 삼켜버린다 집안의 소중히 간직한 진주 구슬이 없어져 떠들썩하게 찾다가 헛간에 있던 윤회를 보고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주인은 윤회를 도적으로 몰고는 그를 헛간 기둥에 결박하고는 날이 밝으면 관아에 알릴 테니 진주를 내놓으라 으름장을 놓는다 '내일 아침에 보면 알게 될 것이니 나를 관아로 끌고 가든 말든 그건 내일 일이고 지금 당장 저 거위를 끌어다가 내 옆에 매어 주시오'라며 말한다 그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기둥에 묶인 채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튿날 아침 거위가 똥을 누었는데 그 속에 진주가 있었고 객점 주인은 무안해하며 물었다 '어제 왜 거위가 삼켰다고 말하지 않았오?' 윤회가 말하길 '그 말을 내가 했다면 당신 기세로 봐서는 필시 거위를 잡아다 배를 갈라 구슬을 찾아내고 말았을 터이니, 공연히 거위만 죽게 되겠지요' 별거 아닌 짐승에 대한 배려가 이러한데 사람에 대한 도량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윤회는 술을 너무 좋아하여 그를 아끼는 세종대왕이 한 자리에서 술 석 잔이상은 마시지 못하게 어명을 내리게 된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커다란 그릇을 지니고 다니며 잔치 때마다 그 그릇으로 석 잔씩 마셨다고 한다
인조 때 김신국 선비의 너그러움
인조 때 김신국이란 선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크게 왜적을 무찌른 충의 지사였다 어느 날 그는 나라 소장의 은(銀)을 셈하게 된다 막중한 일이라 하료들에게 맡겨두지 않고 친히 감독을 했다 하나하나 셈해서 확인하고 상자에 넣어 봉하는데 옆에 있던 하료 하나가 은덩어리를 슬쩍 집어 품속에 넣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화장실 갔다 오는 양 시치미를 뚝 떼고는 들어오는 것이었다 눈치채고 있던 김신국은 갑자기 복통이 나서 더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은괴들을 모두 방안에 모아 두게 하고 그 하료에게 지키도록 명령하게 된다 이튿날 다시 방문을 열고 은괴를 세워보니 그 수가 딱 들어맞았다 그 하료에게 지키게 했으니 하나라도 모자라면 자신 책임이라 어쩔 수 없이 숨겼던 은괴를 도로 갖다 놨던 것이다 김신국은 은괴 사건은 일절 말하지 않고 다른 조그만 허물로 문책을 하며 그 하료를 다른 직책으로 내 보내게 된다
세종 때 황희 정승의 너그러움
너그러움으로 친다면 세종때 황희 정승이 유명하다 한 날 황희 정승이 집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종살이하는 여자 둘이 다투다 하나가 황희 정승을 찾아가 자신이 잘했노라 호소하게 된다 이에 황희 정승은 네 말이 옳다라며 기분이 풀려 물러갔고 상대 여자도 찾아와 호소하였으나 역시 웃으며 네 말도 옳다 얘기라며 기분 좋게 물러나게 된다 이를 본 조카가 항의하듯 말한다 '둘 다 옳다 하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하나가 옳다면 다른 하나는 그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네 말도 옳다 라며 웃는다 아이들의 하찮은 싸움에 공연히 판결을 해 줌으로 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수가 있다 그저 좋은 말로 두 쪽 다 달랜 것이다
여러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쉽게 평가할 수 없다
여러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볼 것이며 여러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볼 것이다 사람은 직접 겪어 봐야 안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 표준이 있어 알지 못하는 사이 주관에 사로 잡히는 수가 많다 인간이란 감정도 미묘하고 행동도 걷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착한 면과 사악한 면을 동시에 지닌 이중인격도 이 세상에 없지는 않다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고 다 착한 사람이 아니고 인기가 없다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유충걸이란 사람은 인조의 고무부였다 성질이 급해 때로는 어린 인조를 때리기도 했는데 그 후 반정을 일으켜 인조는 임금이 되었고 관리 등용후보로 고모부가 올라올 때마다 결재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성질이 급해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유충걸은 성격이 급하고 각박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광해군 때 폭정을 규탄했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자 항의 표시로 대과(大科) 보기를 거부하였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모집해 남한 산성으로 달려오기도 했던 것이다 한 번은 추운 겨울, 연약한 나귀에 종아이 하나를 데리고 수원 근처에 이르자 해가 저물게 되었다 객점도 없는 마을이라 민가의 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재워 달라 간청했지만 모두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말도 못 붙이게 했다 그는 민심의 각박함에 분노하여 종아이를 시켜 수원 부사로 있던 조카를 불러 자네가 어떻게 관리하였기에 민심이 이렇게 각박한 건지 묻게 된다 사실, 관아로 찾아갈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민가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유충걸은 공과 사는 분명히 했다 부사의 친척이라 해서 관아에 들어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사실 천성이 곧은 사람이었다 강직하게 살다 보니 성급해 보이기도 냉혹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남의 눈에는 여러 가지 빛깔로 비치게 된다 사람을 한마디로 평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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