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세계사, 한국사)

왕의 고백을 거절한 후궁 성덕임

dn-min 2024. 8. 2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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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남아있는 정조와 성덕임의 영화 같은 실제 이야기, 성덕임은 정조가 처음으로 마음깊이 사랑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정조는 15년 동안 짝사랑을 이어갔고 두 번이나 거절당한다

 

의빈성씨의 묘 (서삼릉)

정조와 성덕임의 첫 만남

 

정조와 성덕임의 만남은 영조가 나라를 다스린지 39해 1762 어두운 새벽, 당시 좌의정이었던 홍봉한의 집으로 궁에서 출발한 가마들이 집으로 연달아 들어왔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뒤주에 가둬 죽인 사건(임오화변)으로 궁으로 시집갔던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 씨와 세손 정조, 정조의 아내 세손빈 김 씨와 공주 두 명이 함께 집으로 온 것이다
성덕임의 아버지 성윤우는 홍봉한의 집에서 주인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주인을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챙겼던 중인 신분의 청지기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정조와 성덕임이 처음 만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 정조의 나이는 11살, 성덕임은 10살이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혜경궁 홍 씨와 정조는 9일 만에 다시 궁으로 돌아가게 된다 궁으로 돌아온 지 몇 개월 뒤 정조와 성덕임은 궁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혜경궁 홍 씨가 사가에 머무는 동안 성덕임의 총명함과 품성을 알아봤고 공손함을 갖추어 홍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성덕임을 본방 나인(왕비의 친정에서 데리고 온 궁녀)으로 불러들여 입궁했기 때문이다

 

정조의 첫사랑

 

성덕임은 혜경궁 홍 씨에게 신뢰받으면서 궁녀로서의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경희궁에서 지내던 세손 정조는 아버지까지 죽인 할아버지 영조, 자신을 끌어내리려고 안달 난 조정 대신들, 편히 지내지 못했을 정조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고 마음을 놓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정조는 11살에 결혼해 아내 세손빈 김 씨가 있었지만 관직을 사사로이 매관매직하고 이간질을 일삼았던 장인 김시묵을 안 좋게 여겼고 그런 장인의 이미지 때문에 세손빈 김 씨와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성덕임이 14살이 되던 무렵, 정조는 오며 가며 마주친 덕임에게서 생전 가져보지 못한 감정을 갖게 되고 덕임을 불러내어 자신의 후궁이 되어달라 말하지만 세손빈이 아직 아기를 낳지 않은 이유를 들며 명을 따를 수없다며 거절하게 된다 성덕임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감동받은 정조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둘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성덕임은 평범한 궁녀 생활을 이어나갔고 정조는 궐내 정적들에게서 강해져야만 했고 대의를 위해선 덕임을 마음에 묻어두기로 한다 이때 정조는 한줄기 빛이자 믿을 구석이 되어 준 자신의 오른팔 홍국영을 얻게 된다

 

정조의 후사

 

고단한 세손시절이 지나고 1776년 영조가 승하하자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의 시대가 열린다 즉위한 지 2년, 왕실의 후사는 왕의 중요한 책무였는데 후사가 없었던 정조는 정순왕후에 의해 간택 명령이 내려지고 자신의 오른팔 홍국영의 동생 원빈 홍 씨를 후궁으로 들인다 그러나 원빈 홍 씨는 입궁 1년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후사는 실패하게 된다 중전이 자신의 동생을 독살했다며 궁녀들을 위협한 홍국영은 다시 후궁을 들이지 말라며 막기까지 한다 권력 욕심으로 선을 넘고 나라에 분란을 일으킨 홍국영은 모든 관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물러나게 된다

 

혼란스러운 문제들로 마음 둘 곳 없었던 서른 살의 정조는 15년 만에 용기를 내어 덕임을 찾아가 후궁이 되어달라 얘기한다 정조의 후사가 급한 상황에서 보잘것없는 자신보다는 명문가 여인에게서 후사를 보는 게 맞다 생각한 덕임은 정조의 명을 한번 더 거절하게 된다 

 

부부의 연을 맺은 정조와 성덕임

 

1780년 3월 두 번째 간택으로 후궁 화빈 윤 씨를 맞이하고 정조와 합궁 후 2개월 뒤 윤 씨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9개월이 되었을 때 궐내 산실청이 세워진다 그러나 10달을 채워도 궁에서 윤 씨의 아기 울음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고 압박과 부담감으로 윤 씨가 상상임신을 한 것으로 추측하였고 끝내 후사는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1년 후, 31살이 된 정조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성덕임 사이에서 첫아들을 얻게 되고 정조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성덕임은 정 3품으로 봉해지며 정식후궁이 되고 5개월 만에 정1품 의빈으로 승격된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덕임은 아이 한 명 낳지 못하여 외롭고 힘들었을 중전이 마음에 걸렸고 늘 조심히 행동하고 내전을 모시는데 성심을 다하게 된다 당시 후궁이 아들을 낳으면 중전의 아들로 입적하게 되는데 덕임 역시 자신이 낳은 원자를 중전의 아이라고 얘기하지만 덕임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중전(효의 왕후)은 덕임에게 아들을 직접 기르도록 허락하게 된다 그렇게 원자가 3살이 되던 해 문효세자로 책봉된다

 

1785년 12월, 성덕임이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 지 5개월, 첫째 아들 문효세자가 5살 나이에 홍역으로 세상을 뜨게 된다 당시 임신중이었고 홍역으로 아들곁에 있지 못했던 성덕임은 아들 얼굴 한번 못보고 떠나 보내게 된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두번째 아이한테 문제가 되면 나라에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한 덕임은 왕실을 위해 슬픔을 삼키게 된다 귀하게 얻은 아들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정조는 마음을 추스르고 장례를 준비한다\

 

세자를 잃은 후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4개월 후 만삭이 된 덕임은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진다 첫째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그동안 태연한 척했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덕임은 자신이 죽어도 중전사이에 아들을 낳으란 말을 남기고 의빈 성씨는 9개월 뱃속 아이를 가진 채 숨을 거두게 된다

 

정조는 성덕임과 함께 한 순간들을 글(어제의빈묘표지명)로 남겼으며 성덕임을 처음 본 뒤 20년 동안 후궁의 반열에 두었던 정조,한평생 잊을 수 없던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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