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세계사, 한국사)

조선 제 19대 왕 숙종의 여인

dn-min 2024. 6. 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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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의 본명은 장옥정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궁궐 여인의 미모가 언급된 것은 장희빈이 유일하다 한다 미모가 빼어났던 장옥정에게 빠져 사는 숙종을 비판하는 상소들이 올라오면 화를 내며 신하에게 벌을 내렸다 '빈'은 서열 1위 후궁에게 내려지는 직위이다 일개 궁녀에서 서열 1위의 후궁이 된 장희빈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숙종의 여인 후궁 장옥정

 

숙종의 여인들 중 장옥정은 중인 신분인 역관가문으로 재력 있는 막내딸로 자랐다 장옥정은 어린 나이에 나인으로 뽑혀 궁에 들어온다 궁녀생활 10여 년쯤 남다른 아름다움에 숙종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것은 첫 번째 아내 인경왕후가 사망한 후 숙종의 눈에 띄며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승은을 입은 장옥정의 당시 나이는 22살, 숙종의 나이는 20살이다 어려서부터 궁생활을 했던 장 씨를 지켜본 숙종의 어머니는 출신이 천하고 간사하여 궁 내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내쫓으라 명한다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숙종은 장 씨를 궁에서 내보내고 1681년 5월 숙종의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한다 민유중의 둘째 딸, 서인의 실세 집안 인현왕후이다 15세 나이에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두 번째 왕비가 된다 그러나 이미 장옥정에게 마음이 가 있는 숙종은 결혼한 지 5년쯤, 어머님이 사망하자 장 씨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그렇게 다시 재회하게 된 숙종은 중궁전엔 발길도 끊고 장 씨에게 푹 빠져 살게 된다

 

일개 궁녀 신분이었던 장 씨, 아들을 얻고 권력의 꼭대기에 오른다

 

일개 궁녀 신분이었던 장 씨를 종 4품 숙원이란 품계와 직책을 내려주고 숙종의 정식 후궁으로 앉히며 노비 100명을 선물한다 이뿐 아니라 몇 달 뒤엔 종 2품 숙의, 정 2품 소의까지 오르게 된다 승승장구하며 입지를 굳혀가던 장 씨에게 정실부인 인현왕후를 넘어서는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즉위 15년 만에 숙종의 숙원이었던 첫아들(훗날 경종)을 얻게 된 것이다 장 씨의 산후조리를 위해 생모가 입궁하는 과정에서 사대부집 부녀자들도 함부로 탈 수 없었던 가마(옥교)를 중인 신분인 윤 씨(장 씨 생모)가 옥교를 타고 입궁하는 도중 신하들에 의해 가마가 불태워지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분노한 숙종은 가마를 불태운 사헌부 관헌을 엄벌해 죽이라 명하고 1689년 1월 궁에서 또 한 번의 큰 소란이 일어난다 중전이 아직 젊어 차후 아들을 낳을 수도 있으니 원자 책봉은 기다려보자는 대신들을 무시하고 숙종은 말을 꺼낸 지 하루 만에 장 씨의 아들을 원자로 정해 버린다 그리고 장 씨를 정 1품 빈으로 임명한다 권력의 꼭대기에 올라 선 장희빈, 숙종은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워 인현왕후를 서인으로 폐출시키고 4일 뒤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게 된다

 

중전이 되었지만 소홀해진 숙종의 발길, 장희빈의 최후

 

중전이 된 장희빈, 어느 날부터 중궁전을 찾는 숙종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희빈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한다 인현왕후를 모셨던 젊은 궁녀(훗날 제21대 영조의 생모)가 임신과 함께 숙종의 총애를 받게 된 것이다 서인과 남인의 싸움,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의 부정부패, 주요 관직에 앉았던 무능력한 남인세력들, 이들에게 실망한 숙종은 서인 세력들로 대거 교체하고 장희빈을 강등시켜 버린다 그리고 폐위됐던 인현왕후를 5년 만에 다시 궁으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다시 만난 인현왕후는 숙종과 오래가지 못하고 복위한 지 7년 만인 1701년 35살 나이로 병을 얻어 승하한다 그동안 장희빈과 그 일가가 온갖 방법으로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사실을 숙빈 최 씨가 발고하면서 숙종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즉각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려 사사하고 그의 오빠 장희재도 처형한다 숙종은 후궁이 다시는 왕비 자리에 오를 수 없게 법으로 금지시켜 버린다 훗날 20대 왕 경종은 어머니를 다시 중전으로 복위시키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하고 후사도 없이 즉위 4년 만에 세상을 뜬다 그 후 조선의 21대 숙빈 최 씨의 아들 영조가 왕이 되었으니 장희빈의 복위는 더욱 어려워지고 악녀로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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