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정보의 시대라 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알아야 하고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를 요리해서 출세나 생활에 최대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자기 능력을 한껏 발휘해서 남을 뛰어넘는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에 위트, 유머가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대중의 관심을 받고 인기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말은 곧, 남에게 싫증과 실망을 주게 된다
말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하는데 혀 끝에서 새어 나오는 말은 알맹이가 없어 가볍기가 바람과 같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 실려있기 때문에 무게가 있고 진실하다
영조가 중전을 여의고 계비를 간택할 때 직접 왕비 후보를 궁중에 모아놓고 구두(口頭) 시험을 본 일이 있었다 사대부 집안에서 글 배우고 곱게 자란 후보자들은 저마다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다해 고운 목소리와 재치 있는 대답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다
여러 규수들을 시험해 본 결과 결정을 내지리 못하고 일어나려는데 저만치 떨어져 단정하게 앉아 있는 한 여인에게 눈길이 닿은 왕은 어찌 홀로 떨어져 앉아 있는지 묻는다 그 여인은 방석에 자신의 아버지 성함이 가장자리에 쓰여있는데 어찌 그 위에 앉아 있겠냐며 답을 한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다른 여인들은 강, 산골, 하늘... 저마다 다투어 대답했지만 홀로 떨어져 있던 여인은 아무리 깊다 해도 모든 것은 잴 수 있는 법,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다고 답한다
이어 왕은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물었고 다른 여인들은 모란꽃, 함박꽃, 매화꽃, 국화꽃 등을 대었지만 홀로 있던 여인은 다른 꽃들은 한때 아름다움을 줄 수 있지만 목화는 실을 만들게 해 주고 베를 짜게 해 주어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고 이롭게 해 주는 목화꽃이 가장 좋다고 말을 한다
때마침 비가 내려 지붕위의 기와가 몇 줄이나 되는지 묻게 되고 다른 여인들은 고개를 들고 손가락질을 해가며 헤아리느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그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처마밑 땅 위에 패인 자국을 헤아려 몇 줄이라고 정확히 대답한다 이에 왕의 마음이 움직여 왕비로 간택되었고 훗날의 정순왕후이다
실행을 전제로 말을 해야 한다 말수가 적은 것은 실천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말투가 꼼꼼한 것은 진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낮은 것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말이 느린 것은 그 말이 나온 후의 반향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이 많다 보면 실언도 나오고 실수도 저지르고 거짓말이 섞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말을 가벼이하면 그 사람도 경솔해 보인다 말은 사람됨의 표현이다
세종 때 맹사성은 청렴하기로 이름난 사람이다 정승이 되고 난 뒤 한 번은 고향인 온양에 다녀오다 비를 만나게 되고 관아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꾀죄죄한 객점에서 하룻밤 묵어 가기로 결정한다 호기가 대단한 젊은이 하나가 객점에 들어서는데 영남에 사는 부잣집 아들로 의정부에서 일보는 서기 채용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허름한 차림의 한 노인을 보고는 심심한데 바둑이나 두자며 말을 건넨다 둘지 모른다고 답한 노인에게 장기는 둘 줄 아는지 다시 묻는다 이에 노인은 장기도 못 둔다 얘기한다 젊은이는 그 나이 되도록 바둑도, 장기도 못 두다니 뭐 했냐며 핀잔을 준다 그런 노인이 젊은이에게 갑자기 시를 짓자고 제안한다 주제에 시를 지을 줄 안단 말이냐며 말을 함부로 하였고 이에 노인은 어려운 한시 말고 그저 말로 하는 시나 짓되 말 끝에다 '공' 또는 '당' 하는 운을 넣어 짓자고 말한다
"젊은이는 어디 가는공?'
"한양 간당?"
"뭣하러 가는 공?"
"녹사취재(서기) 간당?"
"내가 합격시켜 줄공?"
"천부당 만부당이당!"
그로부터 며칠 후 맹사성과 대신들 앞에 의정부에서 선발된 녹사들이 인사를 드리러 왔다 신임 녹사 중 객점에서 만난 그 젊은이가 끼어 있었고 맹사성은 이렇게 묻는다
"그 사이 어떠한공?"
귀에 익은 목소리에 젊은이가 얼굴을 들어보니 성좌에 앉아있는 정승이 바로 객점에서 자신이 막말했던 그 늙은이 었던 것, 어찌나 놀랐던지 얼굴색이 노래지고 벌벌 떨면서 머리를 조아리며 "죽어지당, 죽어지당.."
맹사성이 크게 웃고는 그 젊은이를 자기 수하의 녹사로 채용하게 된다 이후 자신이 경솔했음을 뉘우치고 이후로는 말조심에 힘써 훗날 이름난 능리(能吏)로 출세한다
속담에 '말 많은 놈 쓸모없다', '말 잘하는 사람치고 거짓말 못 하는 사람 없다' 등 말 많은 것을 경계했고 말 잘하는 것도 신통하게 여기지 않았다 말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인격의 표현이다 가라앉히고 가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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