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의 아주 중요했던 인물로 촉한의 건국자이다 그는 161년 7월 9일 후한에서 태어났으며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품과 인품이 뛰어났고 리더십을 보였다 그의 출신은 평민계층으로 명문가 출신은 아니었으나 그의 사람됨과 믿음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많이 얻게 된다 유비는 정치적으로 혼란과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위한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공적 조직에 가입해 군사적 경험을 쌓았고 당시 정치 세력이었던 원소와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원소와의 갈등이 깊어졌고 유비는 자신의 군을 데리고 독립적인 세력을 만들게 된다
이때 유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던 복숭아 밭에서 유비와 관우, 그리고 장비 세 사람이 우정과 충성을 다지고 의형제를 맺은 일(도원결의)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 사이는 유대 관계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들의 협력은 강력한 군사적 기반이 되었고 많은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다 유비는 이들과 함께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대립되었던 조조와의 전벽대전은 성공적으로 이뤄낸다 이것이 그의 대표적인 전투였다 이 전투로 인하여 유비는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넘어 그의 정치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하는 꿈이 컸던 유비는 국민을 위주로 사상을 중시하였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농민과 상인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제공하려 하였고 이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노력에도 유비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내부의 반란과 외부의 적군들에 맞서 싸워야 했고 그의 아들 유선과의 갈등은 그의 말년을 힘들게 했다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후계자를 원했지만 아들은 그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큰 걱정을 느껴야 했다
유비가 신하를 선발할 때 과거를 묻지 않고 사람의 인품을 중시하였고 용기 있는 자들을 좋아하였으며 그런 사람의 인격과 능력을 중요시했다 이런 유비의 사고방식은 군사적, 정치적으로도 성취에 큰 도움이 되었고 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정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후계자 교육을 강화하였고 주변 세력과의 동맹으로 자신의 왕국을 구축하려 하였다 그리고 제갈량과 같은 똑똑한 인재를 발탁하여 군사적, 정치적으로 훌륭한 전략들을 세워나갔고 민생 안정을 위해 세금을 경감하여 백성들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외부의 위협에 대비해 군사훈련과 방어체계를 강화하였고 필요하면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유비는 223년 삼국시대 혼란한 시기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으로 오나라를 정복하고자 출정하였으나 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고 병상에서 아들 유선에게 자신 대신 제갈량을 잘 보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신의 꿈이었던 '한나라 제국의 부흥'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리더십과 인품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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