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와 남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빈곤과 불평등을 보았고 경제적 불균형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인식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영향력에 있는 쿠바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맞서 싸워야겠다 생각한 체 게바라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쿠바를 원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던 그는 부의 재 분배와 사회주의 체제를 통해 평등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갖는 기본 권리와 존엄성을 주장하였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쿠바는 바티스타 정권하에 부패정치와 폭력이 만연했으며 이런 정권을 갈아엎고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쿠바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체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남부러울 것 없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천식으로 몸이 약해 집에서 책을 읽으며 생각이 깊은 아이로 성장한다 천식이 좋아지면 여러가지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나갔고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의과대학에 진학하였으며 주변의 약한 사람들을 돌볼줄 아는 진정한 의사로 성장한다 그는 교육을 중요시했던 건축가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정의와 인권에 대한 의식이 심어져 있었다
청년시절, 남미 여러 군데를 여행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면서 인권과 정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소수의 특권층만이 부를 누리고 있었고 대다수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사회변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 체 게바라는 낮에는 병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혁명가들을 만나 내일을 도모해 나갔다 그러던 쿠바의 또 다른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와 뜻을 같이하며 쿠바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총을 든 의사, 체 게바라의 명성은 쿠바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전투가 없는 날에는 아픈사람들을 치료해 주었고 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생이 되었으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특권과 차별을 용서하지 않았다 체 게바라는 전략과 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바티스타 군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쿠바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쿠바 정부의 주요인물로 활동하게 된다 1959년1월 82명의 전사들을 태운 배가 25개월만에 쿠바혁명을 성공하며 돌아오게 된다
그 후 산업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로 활동하며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가난한 민중들의 편에 서서 정책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경제 개혁과 교육, 의료분야의 혁신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던 체 게바라는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홀연히 쿠바를 떠나 혁명이 필요했던 콩고로 가 아프리카 사람들과 싸우게 된다 이듬해 볼리비아로 가서 혁명을 시도하였으나 1967년 10월 정부군에 의해 39살의 젊은 나이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자랐고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된 뒤 쿠바를 위해 싸웠던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세계인의 아들로 죽었다
그는 단순한 혁명가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사상과 행동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유산은 지금까지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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