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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에서 배우는 지혜

논어란 무엇인가? 논어란 유교 경전인 사서의 하나로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효제(孝悌)와 충서(忠恕) 인(仁)과 도(道)에 대하여 설명해 놓은 책이다 철저한 인간 중심의 성경을 인간학이고 이를 논어 인간학이라 부른다 고전(古典)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를 알아보자 알고 나면 즐겨라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앎(知)을 좋아할 정도가 되려면 제법 깊이 들어가야 하고 좋아함(好)이 즐기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주 곰삭아서 푹 젖어들어야 한다 공부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 오락, 취미, 인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생이란 뭘까? 종교나 철학의 힘을 빌려서는 알 수 없고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엮어내지도 못 하지만 몸으로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모..

논어인간학 2024.06.28

현실을 등지고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한 방랑시인 김삿갓

1831년 순조시절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세도정치를 일삼았던 장동김씨 가문은 홍경래의 난으로 한순간 잔반(세력이나 살림이 보잘것 없어진 양반)으로 몰락한다 누추한 차림으로 전국을 떠돌며 시 한수 지어내면 백성들은 물론 지체 높은 양반들까지도 김삿갓의 놀라운 제주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지체 높은 양반들도 꼭 만나고 싶어 했던 인물 방랑시인 김삿갓이다 김삿갓의 어린시절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 어마어마한 위세를 자랑하는 명문가 가문에서 태어난 김병연은 5살 무렵 1811년 홍경래의 난(지방차별과 세도정치로 인한 조정부패에 항거하여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난)으로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란군 세력이 김병연의 할아버지가 있던 선천까지 쳐 들..

조선의 5임금을 모시고 세종이 무한 신뢰했던 황희

조선 개국 후 조정의 요청과 동료들의 추천으로 조선의 관리로 임명되면서 황희는 조선에서의 길고 긴 관직생활이 시작된다 조선의 다섯 임금을 모셨고 특히 태종과 세종의 무한 신뢰를 얻었던 황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보자 고려말 14살 첫 관직생활, 태종과 세종의 무한 신뢰를 받다 고려말 1362년 14살에 첫 관직생활을 시작한 황희는 음서제도(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높은 관직생활을 했거나 국가에 공을 세웠을 경우 그 자손은 과거를 치르지 않고도 관직에 나갈 수 있던 제도)로 일찍부터 관직에 나가 일을 할 수 있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정실부인의 소생이 아닌 얼자로 개성에서 태어났다 27살에 과거에 급제하며 개경에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성균관 학관이 된다 고려가 멸망하고 새로운 조선이 건국되면서 30세 때 조선..

폭군 패륜의 대명사 조선 최악의 연산군

연산군과 생모 폐비윤 씨의 행보 연산군은 성종과 중전 윤씨 사이에서 적장자로 태어나 7살에 세자에 책봉된다 ㅡ 조선시대에는 첩의 문화가 있었는데 정실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첫 남자아이를 적장자라 한다ㅡ 연산군이 태어난 기쁨도 잠시 1479년 6월 1일 성종이 생일이었던 중전 윤 씨의 처소로 가지 않고 다른 후궁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화가 난 중전이 임금이 있는 방으로 찾아가 싸움이 일어났고 윤 씨가 그만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 버린다 궁중 전으로서 투기와 저주행위를 하므로 품위를 잃는 행동을 한 전력이 있었기에 이번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성종은 윤 씨를 폐서인으로 만들어 궁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3년 뒤 폐비윤 씨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한다 당시 7살의 연산군은 어머니의 이런 죽음을 ..

조선에 치욕을 안겨 준 인조, 의순 공주, 고통 받는 조선의 여인들

조선에 치욕을 안겨 준 인조, 군신관계의 시작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는 오랑캐라고 얕잡아 봤던 청나라 황제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겪으며 치욕스럽게 충성을 맹세했던 왕이다 인조는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병자호란을 겪고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끌려간다 1649년 새롭게 즉위한 조선의 제17대 왕 효종, 즉위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무렵 청나라 사신들이 비밀문서 하나를 들고 조선으로 온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요구하면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은 청나라 섭정왕 도르곤이 왕실 공주뿐 아니라 대신들과 종친들의 여식들 중 참한 자를 골라 자신의 신붓감으로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순치제의 삼촌이자 청나라 최고 실세였던 섭정왕(임금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 도르곤은 어린 조카를 대신해 나라를 ..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나선 대표적 명문가문 우당 이회영

우당 이회영에 대해 알아보자 우당 이회영은 1867년 4월 21일 이유승과 동래정 씨의 넷째 아들로 한성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형제들과 우애가 깊고 어려서부터 학문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대로 정승판서를 배출한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으로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날(경술국치) 이회영은 형제들에게 중국으로 망명하여 투쟁할 것을 제의한다 재산과 토지를 비밀리에 처분하고 1910년 12월 30일 추운 겨울 압록강을 6형제와 노비를 포함 50여 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만주 서간도로 넘어간다 이곳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인재를 양성하고 군자금 모집과 교육에 전력을 다한다 1918년 고국에서 가지고 온 독립자금이 바닥나게 되자 이회영은 직접 독립운동에 나서게 되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첩보로 ..

흥선대원군 평범했던 아들을 왕으로 만들다

평범한 사가에서 태어난 인물이 왕이 되면 궁이란 명칭이 붙게 된다 운현궁에서 태어난 고종은 절대 왕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흥선대원군의 은밀한 계책으로 자신의 둘째 아들 이명복을 어떻게 왕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흥선대원군은 어떤 사람인가? 흥선대원군의 이름은 이하응, 고종의 아버지로 1820년 12월 겨울 4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들 사이에서 총명하고 영특했던 흥선대원군은 그림과 글씨를 두루두루 배우게 된다 왕가의 후손이지만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중요 자리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은 직계혈통이 아니었고 아들인 흥선대원군 역시 폐위된 사도세자의 증손자로 직계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행정 관련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직계 왕실과 가까운 종친부..

태종이 아꼈던 적장자 양녕대군 남의 첩을 탐하다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에 태어난 장자 양녕대군의 어린 시절태종과 원경왕후 민 씨 사이에 4남 중 후계자는 장자여야 한다는 원칙아래 적장자였던 11살의 장남 '이 제'를 세자로 세운다 태종은 과거 큰아들이 태어나기 전 이미 3명의 아들들을 연달아 잃었던 터라 사실상 4번째 아들이었던 양녕대군이 잘못될까 애지중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유능한 후계자로 키우고 싶어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 삼정승을 선생님으로 두어 가르침을 배우게 했고 양녕대군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태종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세자를 직접 혼내지 않고 옆에서 보필하던 환관들에게 체벌을 내렸다 ㅡ 유교국가에서는 경전, 역사서 내용을 근거로 정책을 결정하는데 학문적 기본이 없다면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한 태종은 나라를 다스리는 필수항목은..

조선 제 19대 왕 숙종의 여인

장희빈의 본명은 장옥정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궁궐 여인의 미모가 언급된 것은 장희빈이 유일하다 한다 미모가 빼어났던 장옥정에게 빠져 사는 숙종을 비판하는 상소들이 올라오면 화를 내며 신하에게 벌을 내렸다 '빈'은 서열 1위 후궁에게 내려지는 직위이다 일개 궁녀에서 서열 1위의 후궁이 된 장희빈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숙종의 여인 후궁 장옥정 숙종의 여인들 중 장옥정은 중인 신분인 역관가문으로 재력 있는 막내딸로 자랐다 장옥정은 어린 나이에 나인으로 뽑혀 궁에 들어온다 궁녀생활 10여 년쯤 남다른 아름다움에 숙종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것은 첫 번째 아내 인경왕후가 사망한 후 숙종의 눈에 띄며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승은을 입은 장옥정의 당시 나이는 22살, 숙종의 나이는 20살이다 어려서부터 궁생활을 ..

정조의 오른팔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

창덕궁 내 규장각을 세워 역대 왕들의 글과 책을 수집, 보관하기 위한 왕실 도서관으로 백성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조선을 만들고 학문 깊은 신하들을 모아 경사를 토론하며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장소로 정조가 세운 기관이다 많은 인재들 중 정조에게 총애받는 인물이 있었는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 이상 책을 쓴 조선후기 문신 실학자 정약용이다 정약용의 집안과 성장기 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광주부 마재현에서 부친 정재원과 모친 해남 윤 씨의 4남 2녀 중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난다 조선에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일하는 홍문관 관리였던 부친은 나주 정 씨 가문으로 9대 옥당이라 불리며 다복하고 명망 있는 집안으로 유명했다 정약용이 태어나던 해 임오화변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일이 ..